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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과 나의 생을 위한 랩소디 : 김지혜
artnom 2011-10-06 03:45:58, 조회 : 1,114, 추천 : 198

향이 없는 꽃이 있다. 하지만 그 꽃에는 원래 향이 있었다. 아니, 아직도 향을 간직하고 있으며, 세상에 뿜어내고 있다. 누군가가 그 자를 향이 없는 꽃으로 거짓 규정했을 뿐이다.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이며, 이번 아트놈의 작업에서 여러 번 등장하는 모란에 대한 이야기는 이러하다. 또 사람들은 봄날에 찬란하게 피어 오른 꽃을 보면서 아름답다 하지만, 사실 그들이 처절한 생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는 주목하지 않는다. 한껏 응축된 에너지를 발산하며, 속살을 터트려내는 꽃들. 그 이유에는 생을 연명하고 연장하고자 하는 절실한 욕망이 머물러 있다. 우리가 그저 믿고 싶은 대로, 보고 싶은 대로 믿고 보는 것이다. 그림 또한 마찬가지다. 아무리 또렷한 형상과 강렬한 색채가 등장한다고 해도 그리고 그 안에 부유하는 캐릭터들이 익살스럽다 해도 이 세상에 마냥 행복하고 마냥 발랄한 이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리 아닌가.

그래서인지 나는 아트놈의 작업을 볼 때마다 곳곳에 살짝이 열려 있는 시간의 문을 발견하게 된다. 그 문으로 걸음을 내딛다 보면, 작가의 요약된 생의 일기가 펼쳐지며, 그 안에는 어떠한 슬픔과 어떠한 기쁨이 만두소처럼 뒤섞여 만들어낸 장면들이 존재한다. 그 장면은 들숨과 날숨처럼 자연스러우며 편안하다. 그리고 그것이 편안한 이유는 겪어내고, 이겨내고, 망각하고, 다시 겪어낸 과정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트놈의 작업에서 보이는 특징은 대략 강한 철선묘와 원색의 사용 그리고 그가 창조해낸 캐릭터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로 요약된다. 한때 우리 한국화 화단에서는 의도적으로 철선묘의 사용을 지양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아트놈의 의도적인 강한 테두리는 어떤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구분을 짓는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스스로를 폐쇄한다는 것이고, 모든 개체가 자기만의 세상에 갇힌다는 것이다. 고로 그들은 비슷한 웃음을 짓고, 비슷한 울음을 내보여도 그것은 결코 같은 웃음과 울음일 수 없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구분과 경계는 실제로 모든 인간 사이에서 통용되는 사실이라는 점이다. 어떠한 사건 앞에서 우리는 타인의 고통이나 우울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없다. 그저 감정적인 동화 혹은 심정적 위로만이 가능할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진실이 강한 선과 색으로 도드라져 있기에 아트놈의 작업은 흥겹지만 마음 한 곁이 시려오기도 한다.

그의 작업이 편안하게 와 닿는 이유는 그 안에서 펼쳐지는 사건이 그가 직접 겪어낸 것이라는 데 있을 것이다. 주변인들이 등장하고, 본인의 삶이 녹아있으며, 앞에서 말한 대로 곳곳에 그의 생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문들이 숨어 있다. 솔직한 것만큼 누군가의 동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설령 그것이 완전한 동화나 공유는 아니라 할지라도 말이다. 이번 개인전에서 보여주게 될 생의 요소들. 그 찬란하게 기쁘면서도 슬픈 이야기를 들어보자. 소박하면서도 화려한, 절제되면서도 충만한 우리의 생을 위한 랩소디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
                                                                                                   2011년10월    미학 김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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